현실성은 없는데 이상하게 속은 시원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너진 교권을 지킨다며 국가가 학교에 특수 감독관을 보내는 웹툰 원작 드라마 〈참교육〉이 그렇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화가 났습니다. 피해자는 도리어 숨어 지내는데 가해자는 사건 밖에서 멀쩡한 장면이 자꾸 떠올랐거든요. 그러다 김무열 배우가 "교권보호국 감독관 나화진"이라며 통쾌한 한 방을 날릴 때마다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요. 2026년 6월 공개 직후 넷플릭스 코리아 1위에 오른 이 작품을 보며, 저는 한 가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우리는 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응징을 보며 이렇게까지 후련해지는 걸까요. 넷플릭스 참교육이 건드리는 그 '사이다'라는 감정을 오늘 들여다보려 합니다.
답답할수록 왜 사이다를 찾게 될까
사회심리학자 멜빈 러너는 사람에게 '세상은 공정하다'고 믿고 싶어 하는 마음, 이른바 정의로운 세상 가설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노력한 사람은 보상받고 잘못한 사람은 벌 받는다는 믿음이지요. 그런데 현실은 자주 그 믿음을 배신합니다.
이건 비단 학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직장에서도 동네에서도, 불합리한 일을 겪은 사람이 오히려 더 움츠리고 숨어 사는 순간을 자주 봅니다. 가해자는 떳떳한데 피해자가 눈치를 보는 뒤집힌 장면 앞에서, 우리는 권선징악을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넷플릭스 참교육이 줄곧 "선생 편도 학생 편도 아닌 피해자 편"이라고 말하는 것도, 어쩌면 우리가 정말 보고 싶은 게 가해자의 처벌 그 자체보다 '지켜지지 못한 사람이 마침내 지켜지는 장면'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사이다 콘텐츠는 흔들린 그 질서를 잠깐이나마 제자리로 돌려놓아 줍니다.
그런데 진짜 복수는 시원하지 않다고 합니다
이 드라마의 해결 방식은 철저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입니다. 자신이 한 행동을 고스란히 돌려받게 해 스스로 깨닫게 하는 응징이지요. 보는 입장에선 더없이 통쾌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막상 직접 되갚는 복수는 기대만큼 시원하지 않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심리학자 케빈 칼스미스 연구진은 사람들이 복수하면 후련해질 거라 예상하지만, 실제로는 그 일을 더 오래 곱씹게 되어 기분이 잘 회복되지 않는다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이를 '복수의 역설'이라 부릅니다. 분노도 마찬가지여서, 시원하게 터뜨리면 풀릴 것 같지만 오히려 분노를 키운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제가 드라마를 보며 느낀 후련함이 그토록 개운했던 이유도 여기 있는지 모릅니다. 어디까지나 제 해석이지만, 그건 내가 직접 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 화면 밖 누군가가 대신 처리해 주는 분노였으니까요. 뒤끝이 없어서 더 시원했던 셈입니다.
통쾌함 다음에 남은 씁쓸함
그래서 한바탕 시원하게 보고 난 뒤에는 솔직히 씁쓸함이 남았습니다. 저런 교권보호국이 현실에도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가도, 그건 결국 드라마 안에만 존재하는 시스템이고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하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특히 마음에 오래 걸린 건, 누군가는 평생 안고 갈 상처를 입었는데 가해자는 너무 빨리 사건 밖으로 걸어 나오는 듯한 장면이었습니다.
가해자들이 끝까지 당당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과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충돌할 때,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쟤가 맞을 짓을 했다"고 여기면 마음이 편해지지요. 심리학에서 인지 부조화라 부르는 이 합리화가, 드라마 속 뻔뻔함의 정체이기도 합니다. 한편 넷플릭스 참교육은 공개 전부터 원작 논란과 체벌 미화 우려를 안고 있었습니다. 2025년 7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은 제작 중단을 요구했고, 공개 이후에도 경향신문 등에서는 "복잡한 교육 문제를 악인 응징이라는 단순 구도로 그린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그러니 이 작품은 통쾌함과 불편함이 동시에 나올 수 있는 드라마입니다. 다만 그 불편함이 꼭 약점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처벌과 회복 사이에서 무엇이 먼저여야 하는지를 되묻게 하니까요.
사이다를 찾는 마음은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우리가 여전히 정의가 회복되길 바라고 있다는 신호일 테니까요. 다만 화면이 꺼진 뒤에도 마음속 억울함이나 분노가 가라앉지 않고 일상을 흔든다면, 그 감정을 혼자 삭이기보다 가까운 전문가와 이야기 나눠 보시길 권합니다. 통쾌함은 잠깐 빌려 쓰는 것이지, 내 안의 응어리를 대신 풀어 주지는 못하니까요.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 좋은 이야기는 속을 풀어 주는 동시에 다음 질문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 참교육이 제게 남긴 것도 그 시원함과,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이었습니다.
참고 출처
- 넷플릭스 〈참교육〉 (2026) — 공개일·설정·출연진(김무열·이성민·진기주·표지훈)
- Lerner, M. J. (1980).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믿음(The Belief in a Just World)』 — 정의로운 세상 가설
- Carlsmith, K. M., Wilson, T. D., & Gilbert, D. T. (2008). 「복수의 역설적 결과」, 『성격 및 사회심리학 저널』
- Bushman, B. J. (2002). 「분노 표출은 불을 끄는가, 키우는가」, 『성격 및 사회심리학 회보』
- 경향신문 「위근우의 리플레이」(2026.6)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작 반대 기자회견(2025.7) — 체벌 미화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