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그들은 왜 아무도 나서지 않았을까

스포일러 주의: 이 글에는 〈더 글로리〉의 주요 사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동은이 맞을 때, 교실에는 다른 아이들도 있었다
〈더 글로리〉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장면은 사실 박연진 무리의 폭력 그 자체보다, 그 폭력을 지켜보던 나머지 아이들의 침묵입니다. 교실 안에는 분명 여러 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거나, 어른에게 알리거나,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훗날 동은을 방관했던 인물 중 한 명이 비슷한 처지에 놓이면서, 드라마는 방관이 결코 안전한 자리가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자꾸 같은 질문이 들었습니다. 그 교실에 있던 아이들이 유독 나쁜 사람들이었을까요. 아니면 사람이 많을수록 오히려 누구도 나서지 않게 되는, 더 보편적인 심리가 작동한 걸까요. 심리학은 후자에 가까운 답을 내놓습니다. 바로 방관자효과입니다.
방관자효과란 무엇인가
방관자효과는 위급한 상황을 목격하는 사람의 수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개인이 나서서 도울 확률이 낮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1968년 사회심리학자 존 달리와 빕 라타네는 이를 실험으로 확인했습니다. 대학생 72명에게 인터콤으로 다른 학생과 대화한다고 알려준 뒤, 상대방이 발작을 일으키는 듯한 음성을 들려줬습니다. 이때 자신 외에 몇 명이 더 듣고 있다고 믿는지를 조건별로 다르게 설정했습니다.
결과는 뚜렷했습니다. 목격자가 자신을 포함해 2명이라고 믿은 조건에서는 85퍼센트가 상황을 신고했지만, 3명일 때는 62퍼센트, 6명일 때는 31퍼센트로 떨어졌습니다. 신고까지 걸린 시간도 목격자가 많아질수록 길어졌습니다. 달리와 라타네는 이를 책임분산으로 설명했습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 많을수록,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나서겠지 하는 생각이 개인의 책임감을 옅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더 글로리에 낀 방관자효과의 렌즈
드라마 속 교실은 이 실험이 말하는 조건과 정확히 겹칩니다. 목격자가 한 명뿐이었다면 오히려 누군가 나섰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명이 동시에 지켜보는 상황에서는, 그중 누구도 자신이 반드시 나서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각자는 서로의 침묵을 보며 자신의 침묵을 정당화합니다. 여기에 더해 드라마는 가해자 부모의 회유, 학교의 사건 은폐까지 함께 보여주면서, 방관이 단순히 개인의 비겁함만은 아니라 구조가 만들어내는 결과이기도 하다는 걸 드러냅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동은을 방관했던 인물이 훗날 비슷한 괴롭힘의 대상이 되면서 방관의 대가를 몸으로 겪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방관자효과가 단지 그 순간의 무책임함으로 끝나지 않고, 이후의 관계와 자기 자신에게도 영향을 남긴다는 걸 보여주는 장치로 읽힙니다.
이 현상, 시작부터 정확했을까
방관자효과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사례가 1964년 뉴욕에서 일어난 키티 제노비스 사건입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38명의 목격자가 살인 현장을 지켜보고도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고 보도했고, 이 사건이 방관자효과 연구를 촉발한 계기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2007년 레이첼 매닝, 마크 레빈, 앨런 콜린스가 발표한 연구는 이 보도 자체가 상당 부분 과장됐다는 걸 밝혀냈습니다. 실제로는 공격 전체를 목격한 사람은 소수였고, 최소 두 명의 이웃이 경찰에 신고했으며, 한 이웃은 소리를 질러 가해자를 쫓아내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사실이 방관자효과라는 현상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연구자들도 방관자효과의 실험적 근거 자체는 이후 여러 메타분석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됐다고 인정합니다. 다만 그 출발점이 됐던 상징적 사례가 언론에 의해 과장된 신화였다는 점은, 우리가 어떤 현상을 이해할 때 첫인상이 된 이야기를 그대로 믿기보다 한 번 더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그럼 나는 어떤 자리에 서 있을까
이 개념을 알고 나니 저는 제가 방관자가 됐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다수의 무리 안에 있을 때, 저는 종종 누군가 먼저 나서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그 침묵을 저 역시 자연스럽게 따라갔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게 바로 책임분산이 작동하는 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요즘은 어떤 상황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지켜보고 있을 때일수록, 오히려 제가 먼저 작은 행동이라도 해보려고 합니다. 신고 전화를 거는 것이든, 한마디 말을 거는 것이든 말입니다.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침묵을 깨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와 이 개념 둘 다에서 배웠습니다.
이 글은 작품에 대한 개인적 해석이며, 등장인물이나 실제 사건에 대한 진단이나 평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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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출처
- Darley, J. M., & Latane, B. (1968). Bystander intervention in emergencies: Diffusion of responsibilit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Simply Psychology 요약
- Manning, R., Levine, M., & Collins, A. (2007). The Kitty Genovese murder and the social psychology of helping: The parable of the 38 witnesses. American Psychologist. Simply Psychology 요약
- The Glory (Netflix, 2022-2023) 작품 정보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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